7_제2회의기문화상(장려상)_수필_이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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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019-05-15 00:00 조회1,395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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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원
질문하는 개인, 응답하는 공동체
수많은 개인들이 각자의 생에 몰두해 파편처럼 흩어져 있는 오늘날 공동체의 개념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본다. 가슴 벅차오르는 연대감이라든가 ‘우리’를 상상케 하는 집단의식이라는 말들이 아무래도 낯설기만 하다. 광야로 나갔던 수많은 이들의 희생을 가로질러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가 ‘공동체’라는 말에 이토록 묘한 추상성만을 느끼는 것은, 결코 그들의 피와 땀을 경시해서가 아닌 지금의 우리가 그 무게감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는 일종의 체념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라는 물음에 당장 떳떳하게 응답해줄 수 없을 것 같다는 작은 두려움들이 모여, 원래부터 우리 삶에 그런 공동체란 필요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불어난 것도 사실이다.
달콤한 무력감이 지속되는 와중에도 김의기 열사의 뼈아픈 질문들은 여전히 우리를 향하고 있다. 그러나 그 질문은 우리에게 답을 요구하는 훈계가 아니다. 질문하는 행위 자체가 공동체의 불씨라는 것, 그렇기에 질문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희망의 제시에 가깝다. 누구나 자신을 둘러싼 공간에 대해 질문할 수 있고, 그에 마땅한 응답을 해주는 것이 우리의 권리이자 의무라는 것을 인식할 때에 김의기 열사가 우리에게 제시한 공동체의 형상이 비로소 또렷해지기 시작한다. 그것은 개개인들의 삶에서 타자를 지우는 일이 자유를 확보할 수 있는 충분한 방법이라고 믿어 온 환상을 깨는 일이다.
왜 각자도생하는 개인보다 질문을 주고받는 공동체가 더 자유로운가? 각자가 나의 몸을 건사하며 연명하는 삶에는 반쪽짜리 안식과 평안이 주어질지 모른다. 그러나 질문할 자유를 강탈당한 개인, 타인의 질문에 응답할 기회를 갖지 못하는 개인들은 언제 그 평화로운 침묵 속에서 낙오될지 모른다는 공포와 불안을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공포와 불안이 잠식한 틈을 타 타인의 고통은 너무나 쉽게 타인의 책임이 되어 버린다. 그 곳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미친 듯이 달려 운 좋게 살아남은 자가 되는 것뿐이다.
질문이 필요 없다는 믿음이 팽배한 지금에도 여전히 공동체의 흔적을 좇아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이 있다. 80년의 김의기 열사의 질문이 정치적 자유에 대한 갈망에서 시작됐다면, 오늘날의 질문은 경제적 불평등, 성적 지향, 젠더 문제에 이르기까지 더욱 다양한 문제 의식에서 시작되고 있다. 김의기 열사의 질문이 그러했듯 위로부터 조직되거나 강요된 질문이 아닌 바로 우리가 발을 딛고 서있는 이 곳에서 출발한 질문이다. 이러한 질문들을 마주했을 때 우리는 과연 우리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 맞는지, 옳다고 생각해왔던 안전한 길이 사실은 타인의 고통을 모른 척 하고 스스로의 자유를 헌납하는 길이 아니었는지 응답할 줄 알아야 한다. 김의기 열사가 자신의 몸을 내던져가며 제시하고자 했던 자유로운 공동체의 모습은 어쩌면 개개인 모두가 투사가 되는 공동체가 아니라, 타인의 고통 어린 질문에 이처럼 응답할 준비가 되어 있는 공동체일지 모른다. 다양한 개인들이 납득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토해낸 질문들에 우리는 공동체로서 응답해주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그동안 멀리 밀쳐만 놓았던 공동체의 형태를 발견할 수 있는 길일 것이다.
이정원(2016, 커뮤니케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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