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후기] 의기제를 다녀와서 (김기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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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023-06-02 02:17 조회3,546회 댓글2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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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기형에게
2023년 의기제에 참가하고 나서 후기를 써달라고 하는데, 보내기 전에 형에게 보내는 편지로 바꿔 쓰고 있어요.
형이 저에게 물었죠?
지금, 동포여 무엇을 하고 있는가? 기백아 너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느냐? 형 후배로서 형이 다닌 학교에서 전 학생운동을 했어요. 부총에 지구집행위에 대학원총학생회장까지 거의 10년이었네요. 그게 형의 질문에 포박당한 저의 대답이었겠죠?
가까스로 학부를 졸업을 한 후에 제일기획에 입사지원을 했는데, 최종 임원진 면접에서 그들은 저에게 형과는 다른걸 물었어요. 삼성의 복수노조 정책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옆에 있던 면접자들에게는 서태지에 대해서 묻길래 저도 그 대답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한방 맞았던거죠. 저요? 말을 못 하고 말았어요. 바보같죠? 두고두고 후회가 됐어요. 시원하게 소신껏 대답하지 못했던 것을 후회한적도 있지만 살면서 먹고사는게 너무 힘들 때는 그들이 원하는 대답을 하고 말걸. 그랬다면 어땠을까? 그런 후회, 솔직하게 하고 있어요.
의기형, 형을 기리는 행사에 다녀온 주말에는 영화 영웅을 찾아 봤어요. 근데 형 그거 알아요? 형 안중근 의사를 많이 닯았어요. 진짜에요. 저만 그렇게 생각하는 걸까 싶어 검색도 해봤어요. 두 사진을 겹대서 봤는데 진짜 닯았더라구요. 안중근 의사는 회령전투에서 만국공법이란 대의명분을 들어 일본군 포로를 풀어줘요. 국제협정을 지키자는 입장이었어요. 결국 그때 풀어준 일본군 포로의 밀고로 큰 패전을 하고, 동지가 잡혀가고 죽임을 당해요. 이토를 저격하고 붙잡혔는데, 항소를 하자는데 포기해요. 순순히 형장의 이슬로 떠나가는 최후를 선택해요. 한마디로 고구마 백 개.
그런데, 나는 안중근 의사의 그런 선택을 왜 고구마로 받아들일까? 이건 나의 문제다. 일본인은 테러리스트로 낙인찍는다는데, 나는 고구마 의사로 생각하게 되버린 것일까? 각자도생에 내몰리며 이해타산을 하는 자가 되버렸다는 반증일까요?
의기형은 질문 하나를 남기고 떠났어요. 질문은 답이 나올 때까지는 살아있나봐요. 그래서 질문은 힘이 있어요. 또 질문은 나를 돌아보게 해요. 파묻혀 사는 나를 끄집어내서 마주하게 하는 힘이 있어요. 그래서, 형은 아직도 형이 던진 질문과 함께 우리와 함께 살아있다고 생각해요.
의기제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은 의기 장학금 수여식이었요. 형이 던진 질문은 얼마나 살아서 강력한지 전 봤어요. 동포여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이젠 형이 말한 그 동포들은 다 사라진줄만 알았는데, 수많은 동포들이 형의 질문에 살아나고 있다는 것을 제가 똑똑히 봤습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행하는 폭력에 대해서 묵과하지 못하는 후배들이어요. 증언하고 행동하는 후배들이어요. 이 사회의 소수자들, 희생당하는 자들을 대신하여 목소리를 내고 그들과 함께 하려 몸부림치는 후배들이 형의 질문에 대답하며 살고 있어요. 형 하늘에서 보고 있었죠? 웃고 있던 것 맞죠? 저희들도 바라보면서 그랬으니까요.
그런데, 그들에게 장학금을 줘야 겠다고 마음먹은 동포들도 대단해요. 그들도 형의 질문에 대답을 하고 있는 것일거에요. 계현아 재영아 규영아 너는 무엇을 하고 있느냐? 그 대답을 귀담아 듣는 후배들이에요. 그렇게 우리는 형의 분신이 되어 형의 질문에 대답을 하며 살고 있어요.
의기제를 다녀온 다음날인 18일에는 다큐를 봤어요. 당시 종군기자로 현장에 있었던 로숑과 쇼벨에 관한 이야기였어요. 죽은 아버지의 영정을 든 꼬마 조천호씨를 찍은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더라구요. 그들은 상무체육관에서 아이를 보았고, 돌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 사진을 찍었다고 했어요.
“저를 보고 ‘헬프미 헬프미’ 외쳤어요. 할 수 있는 게 없었어요. 그래, 사진을 남기는 거다. 기억하는 거다. 잊혀지지 않게 하는거다.”
43년이 지났어요. 그들이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던 사진을 통해 새롭게 밝혀진 광주의 진실이 있었어요. 형이 소중한 생을 던져 알리고 싶었던 그 진실이 아직도 밝혀지고 있어요.
기억한다는 것, 이어간다는 것 그리고, 더 잘 기억하고, 더 잘 이어간다는 것. 참으로 소중한 것임을 새삼 깨닫고 있어요.
동포여 무엇을 하고 있는가? 장학금 꾸준히 낼게요. 적은 돈이지만 아들 배트 한자루 덜 사고 회비 꼬박꼬박 낼게요. 매년 의기제에도 꼬박꼬박 참가할게요. 형 닮은 후배들도 또 만날게요. 그 이상은 못할지도 몰라요. 이해해주세요. 선배님.
2023년 5월 25일
물리학과 90학번 후배 김기백 올림
댓글목록
계수나무님의 댓글
계수나무 작성일한방 맞은것 같은데 시원하네요 감사합니다
김기백님의 댓글
김기백 작성일정말 공개가 되었군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