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주기 동포여, 무엇을 하고 있는가 장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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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021-10-06 15:42 조회1,437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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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영식
- 승인 2019.05.31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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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30일은 김의기 열사 39주기입니다. 김의기 열사는 1980년 5월 30일 오후 4시 30분경 종로5가 기독교회관 6층에서 “동포에게 드리는 글”이라는 유인물을 뿌리고, 계엄군 두 대의 장갑차 사이에 몸을 던졌습니다. 그의 나이 21살 청년이었습니다.

그는 경북 영주 출신으로서 농민운동가를 꿈꾸었습니다. 그는 1980년 5월, 광주학살이 일어나고 있던 시점에 광주에 있었다고 합니다. 1980년 5월 19일 광주의 북동 성당에서 함평고구마 사건 보고대회가 열릴 예정이었고, 김의기 열사는 이 보고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광주에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보고대회는 급변하는 시국의 상황에 의해 취소되었습니다. 이 보고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함께 있었던 윤기현 동화작가는 김의기 열사와 함께 광주항쟁을 목격합니다. 동족의 군대에 의해 동족이 처참하게 난자당하는 현장을 목격했던 김의기 열사는 시민군에 참여하려고 했으나, 윤기현 작가가 “나는 시민군과 합류해서 싸우겠다. 너는 너라도 서울에 올라가서 광주의 사실을 알려야 한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김의기 열사는 윤기현 작가의 말에 동의하고 서울로 옵니다. 그가 서울에 나타난 것은 5월 21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전남도청의 시민군이 계엄군에 의해 무자비하게 진압된 사흘 뒤 그는 종로5가 기독교회관에 나타납니다. 그날 기독교회관에서는 ‘금요기도회’가 예정되어 있었으나 취소됩니다. 이미 기독교회관에는 계엄군의 장갑차가 주둔하고 있었고, 계엄군과 정보과 경찰들이 기독교회관 건물 안에 진입하고 있었습니다.

김의기 열사는 기독교회관 6층에서 “동포에게 드리는 글”을 작성합니다. 그후 계엄군이 들이닥칩니다. 6층에서 홀로 있던 김의기 열사는 계엄군의 무자비한 진압에 이끌려 유인물을 뿌리며 떨어집니다. 당시 그는 계엄군이 주둔해 있던 두 대의 장갑차 사이로 떨어집니다. 그의 나이 만 스물하나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죽음은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당시 개신교 성직자들도 김의기 열사의 이름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의 죽음에 대한 여러 가지 의문에 대해서도 증언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는 투신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국가공권력에 의해 타살된 것입니다.

1980년 5월 광주학살 이후 최초로 광주의 참상을 알렸던 김의기 열사. 광주도 김의기 열사도 현재진행형입니다. 그가 우리에게 던졌던 ‘동포여, 무엇을 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은 지금도 유효합니다. 그가 살아 있다면, 저와 함께 환갑을 맞았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평화를 빕니다.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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