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8주기 의기제를 마치며 - 초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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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021-10-06 17:12 조회2,161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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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도의 5월도 의기제와 함께하며 끝이 났다. 대학교 입학하고 두달이 지난 16년 5월, 김의기가 내 삶에 갑작스럽게 들어왔다. 당시 나는 '문득'이라는 역사 소모임에서 활동을 하고 있었고, 5월을 맞아 광주 민중항쟁에 대해 함께 공부했다. 그리고 나서 소모임원들과 제36주기 의기제 추모문화제에 함께 갔었다. 그때 알게 되었다. 학교에 이런 행사를 만들어가는 학생들이 있었구나. 김의기가 이런 사람이구나.
부모님 나이대이신 졸업생 선배님들부터 교수님들, 재학생들, 학교 교직원분들 그리고 김의기 선배님의 가족분들까지 한자리에 어우러졌다. 진지할땐 진지하고 즐거울땐 즐겁게 다채로운 이야기들로 무대가 채워졌고 사람들은 해가 질수록 막걸리에 얼큰하게 취해갔다. 그곳에 김의기 선배도 함께 하셨다.
그리고 문화제가 끝나고 몇주 뒤 광주기행에 참여했다. 내가 평생을 고민하며 살아가야할 질문들이 전부 그곳 광주에 있었다. '산자'로서 어떻게 살아갈것인가? 단순한 질문이지만 광주에 다녀온 뒤 가슴속에 박혀버린 질문이다. 즉 광주는 옳고/그름, 진보/보수와 같은 복잡한 문제가 아니라 삶과 죽음, 이 아주 단순하면서도 극명한 경계를 절감하게 한다. 머리로 계산해서 이해해야하는 문제가 아니다. 그들은 죽었고 나는 살았다는 단순한 진리를 깨닫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 사실을 망각하지 않기 위해 의기제에 매년 참여해온 것 같다. 적어도 일년중에 5월 한달은 내 자신에게 경종을 울리고 싶어서였다.
그 다음해인 17년은 의기제 기획단으로 참여해 추모문화제를 함께 만들었다. 그리고 올해는 광주기행팀장으로 일을 했다. 확실히 직접 일을 하다보니 일반 참가자였을때보단 사유할 시간이 적어지긴 했다. 특히 행사 당일에는 정신이 없었다. 그러나 더 나은 행사를 만들기 위해 깊은 고민들을 하고 광주 민중항쟁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했다. 기획단 내의 인력이나 일 배분의 문제 등 여러 실무적인 어려움이 있긴 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을 하려 노력했다. 부족한 점이 많았지만 그래도 끝내고나니 뿌듯했다. 광주에서 김의기 선배를 찾아뵀을때 그래도 조금은 당당할 수 있었다. 내가 죽고 나서 그를 만났을때도 당당하고 싶다.
올해 38주기 의기제의 기치는 "죽어서 살지 아니하기 사람으로 살기" 였다. 이 말은 김의기 선배 일기장에 나와있는 말이다. 이 말은 즉슨 '깨어서 행동하라'는 시대의 명령이다. 어떻게 사는 것이 '산 사람'으로 사는 것인지 끊임없이 고민하라는 이야기다. 결국 산자의 의무를 묻고 있다. 올해 의기제에선 이러한 기치 아래, 당연한 권리를 외치고 같이 살자고 외치는 여러 투쟁가들을 만날 수 있었다. 삶 속에서의 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나에게 정말 값진 시간이었다.
80년 당시 윤상원 열사의 마지막 연설 중 이런 말이 있다. "우리가 비록 저들의 총탄에 죽는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우리가 영원히 사는 길입니다." 당시 광주의 상황 속에서 사람으로 사는 길은 지금 저들과 맞서 싸우다 '죽는 것'이라는 말이다. 역설적이지만 그들은 살기 위해 죽음을 선택했다. 비록 육신은 죽었지만 그들은 영원히 살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영원히 살고 있고, 수많은 사람들을 사람으로 살게 하고 있다. 그렇다면 당신은 지금 사람으로 살고 계신가요? 육신은 살아있지만 죽어있진 않으신가요? 평생 나를 따라다닐 질문인듯하다.
[출처] 제38주기 의기제를 마치며|작성자 초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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