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회 김의기문화상 수상 작품-소설 『의기』를 통해 돌아본, 한 번뿐인 젊음 어떻게 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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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020-11-27 17:24 조회1,850회 댓글0건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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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의기』를 통해 돌아본, 한 번뿐인 젊음 어떻게 살 것인가 서강대학교 영문과, 박 수진 김의기 열사 산화 40 주기를 맞아 2020 년 05 월 20 일 소설 『의기』가 출간되었다. 스물두 해의 불꽃 튀는 삶을 살다 간 김의기 열사를 주인공으로 한 이 소설은 의기의 삶 전체를 기록한 세심한 수기이자 또렷한 선언 혹은 무수한 고백이다. 소설 『의기』에서 그는 농민가정의 막내이자, 희영의 다정한 연인이자, 꿈을 가진 대학생이자, 민주 운동가라는 다면적인 모습으로 등장한다. ‘열사’로서만의 그가 아닌, 입체적인 캐릭터로서 그의 인간적인 모습들을 하나하나 섬세하게 주목하여 담은 소설이라는 점에서 상당히 인상 깊었다. 민주 운동가 김의기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담아낸 소설인 만큼 시대적인 배경 측면에서 한 번, 그리고 소설을 통해 바라본 그의 인간적 삶의 측면에서 한 번, 읽으며 느낀 점들을 풀어나가보려 한다. 1.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바람의 방향이 일정치 않다.” 라는 문장으로 출발한 이 소설은 한국 민주주의의 암흑기였던 70-80 년대 당시의 혼란을 그대로 나타낸다. ‘일 년 가까이 지속된 계엄령. 밤 10 시 이후엔 누구든 집 안에 있어야만 했다. 늦었다 싶은 땐 가까운 여관이든 여인숙이든 파고들어야만 했다. 가게는 일찌감치 셔터를 내리니 퇴근 후에 얼근하게 취할 만큼 마실 수도 없었다. 설령 성급하게 술을 거푸 들이킨다 한들 사람들은 채 취하지 못했다. 취기를 못 이겨 길에서 주태라도 부리다가는 어딘지 모를 곳으로 끌려갈 수도 있었다. 가족에게 조차 단 한 줄의 통보도 가지 않는다. 가장이든 자식이든 생사조차 알 수 없는 세상이었다. 가족이 경찰서든 어디든 찾아다녀봤자 행방이나 생사를 알 수 있는 문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다 떠올리는 곳은 삼청교육대. 사람들의 머릿속에 그곳은 축생지옥이었다. …(중략)... 술잔을 기울이다, 혹은 정류장에서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나누는 소소한 대화 중에도 사람들은 수시로 주변을 둘러보곤 했다. 시절을 조롱하는 어떤 말도 칼이 되어 돌아오고, 심지어 신세 한탄조차도 가려서 해야만 했다.’ -8p, 희영 ‘모든 것은 정화라는 순한 이름 하에 이루어지고 있었다. 과거 저항의 전선에 섰던 언론이 이번엔 제일 먼저 엎드렸다. 신문사들이 일심동체로 자율정화를 선언하자 거의 천 명의 기자들이 해고당했다. 엎드렸다. 대한민국의 거대 조직조차 스스로 제 식솔을 내바치고 있었다.’-9p, 희영 사생활이 없었던 시기. 밤 10 시 이후는 모두 집에 있어야만 했던, 말 한 마디를 가려했던, 심지어 언론조차도 탄압받던 시기. 소설의 첫 문장에 등장한 ‘방향이 일정치 않은 바람’ 마저도 정화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이 시기의 모습이 『의기』 속에는 그대로 묘사되어 있다. ‘소소한 대화’, ‘퇴근’, ‘술잔’, ‘가게’, ‘정류장’과 같은 일상어 사이에 끼어있는 ‘칼’, ‘삼청 교육대’, ‘축생지옥’과 같은 무시무시한 단어들이 일상 속에 파고든 그 당시 일상마저 제한된 상황과 모습을 잘 보여준다. ‘새로운 시대에 대한 꿈이 넘쳤다. 물론 모든 게 불확실했던 것은 맞았다. 자유니 민주니 하는 것들은 기억 속에서 지워진 지 너무 오래되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사람들은, 특히 욕망을 포기하지 못하는 젊은 사람들은 꿈꾸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그 시절을 아직도 ‘서울의 봄’이라고 일컫는다’-10p, 희영 그리고 이어, 소설의 도입부에 제시된 당시의 삭막한 현실과 대비되는 ‘꿈’과 ‘봄’이라는 단어가 등장하기 시작한다. ‘서울의 봄’처럼 다시 민주주의의 봄이 오기를 그리는 사람들의 꿈이 등장하고, 그 꿈이 다시 숨죽이는 장면이다. 소설 속 ‘서울의 봄’을 설명한 문단은 5.18 민주화운동과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적 배경 상의 차이는 있지만 자유를 빼앗긴 이의 개탄의 목소리라는 점에서 저항시인 이상화의 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떠올리게 한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이상화 詩 지금은 남의 땅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 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 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나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 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 자국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조리는 울타리 너머 아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 같은 머리를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혼자라도 가쁘게나 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 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 매던 그 들이라 다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여 다오 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웃어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 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 ―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빼앗긴 들과 봄을 되찾고 싶다는 메시지를 담은 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와 소설의 다음 구절이 매우 닮아있다는 생각을 했다. ‘포기하지 않는 삶을 산다면 피할 수 없는 운명이 다가오고 있었다. 식민지배하의 그 사람들처럼. 해방 공간의 그 사람처럼. 유신독재하의 수많은 선배들이 마주한 것처럼..(중략)...얼마다 더 어두워져야 새벽이 올지.’ -108p, 농활 얼마나 더 어두워져야 새벽이 올지. 언제 끝날지 모를 탄압에 저항하며 의기(義基)는 그 당시 상황에서 가장 먼저 식민지배를 떠올린다. 그리고 곧이어 해방 공간을, 유신 독재를 떠올린다. ‘과연 봄은 올 것인가’라고 되물었을 수많은 순간들 속에서, 자신의 다가올 운명을 피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기(義基)의 의기(意氣)가 드러나는 구절이었다. 독자로서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그가 ‘봄’을 마주하는 자세였다. 빼앗긴 들에 봄이 저절로 오는 것은 아닐 것이다. 사계절이 가면 결국 봄이 돌아오게 되어 있듯, 언젠가 봄이 올 것이라는 확신을 바탕으로 저항하기 위해 운명을 바친 수많은 민주 운동가들이 이러한 봄을 앞당겼을 것이다. 모든 것이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이러한 확신을 가졌던 태도, 소설 속 의기라는 한 사람을 통해 다른 수많은 역사 속 운동가들의 삶과 태도, 그리고 그들에 대한 감사로 이야기를 확장시켜 바라보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는 질문을 누군가 한다면 이 소설이 바로 그 빼앗긴 들에 봄을 되찾는 과정, 그 속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노고가 들어 있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고 답하고 싶다. 2. 한 번 뿐인 청춘, 어떻게 살 것인가 ‘청춘(靑春)’은 새싹이 파랗게 돋아나는 봄철이라는 뜻으로, '십 대 후반에서 이십 대에 걸치는 인생의 젊은 나이 또는 그런 시절'을 이르는 말이다. 소설 『의기는 20 대에게 ‘하나뿐인 청춘,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는 점에서 유의미하다. ‘….젊은 사람들은 꿈꾸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래서 그 시절을 지금도 ‘서울의 봄’이라 일컫는다.’ -10p, 희영 젊은이들에게는 꿈이 있었다. 그러나 시대는 꿈을 가질, 꿈을 펼칠 자유조차 막으려 하고 있었다. ‘긴급조치 아래의 세상에선 수긍해야만 하는 그림이었다. 사복 차림의 형사가 자기 신분을 밝히지도 않은 채 마음껏 검문할 수 있는 세상. 학년이나 과목을 가리지 않고 형사가 멋대로 들어와 학생인 양 자리 차지하기 일쑤인 대학의 강의실들. 그들의 한쪽 귀엔 항상 흰색의 이어폰이 꽂혀 있었다. 강의를 하는 교수나 수업을 듣는 학생이나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들에게 경멸의 눈빛을 보내는 것뿐.’ -24p, 새로운 세상 신촌 자유의 상징, 대학의 거리인 신촌마저 검열로 물든 1980 년대의 단상을 엿볼 수 있는 단락이었다. 형사가 가방을 뒤지고, 옷주머니를 털어내도 아무런 제재를 가할 수 없던 시절. 불법적인 것들이 합법적으로 통용되던 시절. 검열이라는 이름 하에 벌어지고 있던 무자비한 침해들이 흔하디 흔한 일상이었던 시절. 이 시절, 정결한 교육의 공간으로 머물러야 할 대학을 침범 당하면서도 교수와 학생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말 그대로 경멸 가득한 눈빛을 보내는 것뿐이었다. 말 한마디에 끌려가버릴 수 있는, 언론 조차 굴복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저항이라는 선택지는 그리 간단히 마음 먹고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시대 속에 새로운 세상을 꿈꾸고 있는 신촌의 청년들이 있었고, 무풍지대에서도 저항의 바람이 불고 있었다. ‘순종과 반역이 허리띠 풀러놓고 맘놓고 논쟁할 수 있는 곳(27p, 새로운 세상 신촌)’이 바로 대학가였다. 젊은이들은 이곳에서 꿈을 꾸고, 논쟁을 했고, 결국 신념을 행동으로 옮겼다. ‘1977 년 10 월에 들어서며 대학가는 부글부글 밑에서부터 끓으며 차오르는 활화산과 같았다. 겉으로는 전혀 드러나지 않지만 신림동이든 신촌이든 긴장감이 팽배하고 있었다. 그 냄새는 정부나 경찰들의 후각에도 걸려들기 마련이었다. R 관 앞 잔디밭에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들고 그림자가 길어질 즈음 사복형사들 서넛이 뿔뿔이 흩어진 상태로 학생들 주변을 서성인다. -개안, 72p. ‘10 월의 마지막 화요일에 신촌에 광풍이 불었다.’ 개안, 79p. 전태일이 산화한 후에도 변화지 않는 사회에 대한 기사를 읽고 개탄하던 젊은 학생들은 거리로 나간다. 연세대에서 시작되어 백양로, 서강대, 이화여대까지 삽시간에 저항의 바람이 번지는 과정을 소설은 네 페이지에 걸쳐 자세히 묘사한다. 최루탄에 쫓기며 ‘콧물을 쏟고 구토를 하다가도 매번 시위대로 다시 달려가는 여학생들, 대의를 위해서라면 목숨까지도 거는 사람들(개안,82p)의 모습들을 보며 의기가 느낀 동지의식과 희열은 독자에게로 전이된다. ‘운동. 점 하나 찍을 때 마다 한 단어씩 창 너머에 찍는다. 혁명. 동지. 농촌. 농민. 농 업. 승리’ ‘We shall over come. We shall overcome.’ - 139p, 어둠의 끝 어둠의 시 작 마치 윤동주 시인이 ‘별 헤는 밤’에서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의 시를 노래했듯이, 의기는 속 으로 점 하나에 운동과 점 하나의 혁명을 노래한다. 엄숙하고 진지한 그의 모습을 보면서 독 자들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이토록 간절하게 얻고자 했던 ‘자유’와 ‘민주주의’의 시대를 살고 있는 청춘으로서, 그들의 노고를 바탕으로 누리게 된 이 자유로운 청춘을 어떻게 살 것 인가에 대한 끊임없는 자기 의문을 던지게 한다. 소설은 의기의 민주 운동 뿐만 아니라 학생 활동과 연애를 다루며 그의 청춘에 다시 한 번 의 미를 부여한다. 정화진 소설가는 주간경향 인터뷰를 통해 “운동권적 시각을 버리고 오로지 ‘의 기 형’의 삶에 천착하려고 했다”며 “지금의 젊은 세대가 읽을 수 있는 책이 됐으면 좋겠다. 당 시 의기 형이 무엇을 고민했는지, 어떤 생각을 했는지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 러한 작가의 의도는 젊은 세대인 나에게 일단 잘 전달되었다. 민주 운동과 학생 활동, 연애, 우정 속에서 느꼈던 의기의 인간적인 고민점들을 드러낸 점이 공감을 이끌어낸 가장 큰 요인 이었다. “할 수 있는 게 있는지 없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 최소한 공부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농촌의 현실에 대해 깡 무식한 상태로 봉사를 하러 간다는 것은 마을과 그 사람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봐요. 그분들이 가슴에서 꺼내는 얘기를 이야기를 이해할 수도 없고요.” -38p, 새로운 세상 신촌 대학 쿠사 동아리 활동을 하고 있던 의기의 소설 속 대사를 통해 ‘열사’라는 수식어를 붙이지 않고 온전히 김의기라는 사람, 대학생 김의기가 자신의 청춘을 대하는 태도를 엿볼 수 있었다. 쿠사에 들어가 농촌 봉사 활동을 하지만 대상에 대한 사전지식이 없는 봉사, 축제 기간 술장사, 밤새 술만 먹는 엠티에 회의를 느낀 그는 이 활동을 제대로 해보겠다고 선언하며 ‘염병, 같이 할 사람 없으면 나 혼자라도 한다!’ 이렇게 투박한 진심을 보인다. 진지하게 삶을, 그리고 현재의 자신이 하고 있는 것들을 바라보았던 그의 태도가 독자인 나에게도 ‘나는 어떻게 대학 생활에 임하고 있는가’, ‘내가 하고 있는 것들을 진지하게 바라보고 있는가’를 되돌아보는 계기를 제공해주었다. ‘같은 편이 있다는 것, 먼 도시에서도 뜻을 함께하고 필요하면 함께 싸울 사람들이 있 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 대원들의 몫이었다. 의기가 빛을 발하는 지점은 바로 그곳이 었다. 농민이 무인도에 홀로 고립되어 있지 않다는 것, 찾아보면 지원군이 많다는 것 을 알려주는 것이 그와 대원의 몫이었다.’ - 115p, 농활 더불어, 소설은 청춘에게 ‘내가 빛을 발할 지점은 어디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의기는 하계 농촌활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농업문제연구모임에 적극적으로 임하며 관심 분야인 ‘농업, 농촌’ 문제를 해결하고 농민들을 돕기 위해 자신이 집중할 수 있는 활동들을 하나씩 해나간다. 소설책의 맨 뒤에 실린 김의기 열사 유고 ‘한국 농업과 농지제도’만 보더라도 그가 농업 발전 에 대해 했던 고민들과 모색해왔던 문제 해결방안들이 얼마나 진지했는지 느낄 수 있는데, 확 실한 지점은 그가 농촌활동에서도, 민주 운동에서도 항상 앞서 ‘행동’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소설은 이러한 활동들에 대해 이 부분이 그가 ‘빛을 발하는 지점’이자 ‘그의 몫’이었다고 시사 한다. 그렇다면 내가 빛을 발할 지점은 무엇인가. 내가 관심이 있는 것은 무엇이고, 열정을 가 진 분야는 무엇이며, 내가 그 분야에 기여할 수 있는 것은 어떤 부분인가? 젊은 세대들은 스 물 두 살 청년의 삶을 접함으로써 자아와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확장해 나갈 수 있다. ‘얼어붙은 저 하늘 얼어붙은 저 벌판 태양도 빛을 잃어 아 캄캄한 저 어둠의 거리 어디에서 왔나 얼굴 여윈 사람들 -양희은 <금관의 예수> …(중략)… 금관의 예수를 부를 때 떠오르는 수많은 사람들, 그리고 그 노래를 부를 때 자각할 수 밖에 없는 무력한 청년으로서의 자화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통성명은 나중이 었다.’ -70p, 개안 ‘그녀에 대한 애정이 깊어질수록 번민도 깊어지고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불행하게 한다면 그건 사랑이 아니라는 생각. 졸업하기 전이든 후든 자신에게 닥칠 수 있는 경 우의 수를 생각하면 자신의 사랑이 모순 투성이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점점 강해졌다. 언제든 구속될 수 있다. 그런 건 일정표에 나와 있는 것도 아니고 어느 날이라도 예고 없이 닥칠 수 있는 것이었다. 자신으로 인해 희영이 겪게 될 고통을 상상만 해도 죄의 식에 몸서리가 쳐졌다. 게다가 극한적인 발악을 하는 유신의 막바지에 소리도 소문도 없이 자신의 존재가 사라질 수도 있었다.’ -139p, 어둠의 끝 어둠의 시작 소설은 의기와 찬교의 만남과 우정, 그리고 의기와 희영의 연애와 사랑 이야기를 통해청춘남 녀가 가지는 감정들이 그의 삶에도 자리하고 있었음을, 그리고 신념을 향해 나아가면서도 그 소중한 감정들을 잃지 않기 위해 고민했던 과정들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의기가 느꼈던 감정 들이 1인칭 시점에서 오롯이 소설 속에 드러남으로써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을 수 있는 두려움 에도 불구하고 그가 반드시 알리고자 했던 진실, 쟁취해내고자 했던 민주주의에 대해 더욱 깊 이 생각해보게 되는 계기를 제공해주었다. 마지막으로 스물 두 살의 청년은 유인물의 독자에게 의문을 던진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그리고 얼어붙은 현실을 해결하기 위해 지금 ‘일어나자’고 말한다. 그의 글은 마지막 까지 승리에 대한 의지와 확신으로 가득차 있었다. ‘동포여 무엇을 하고 있는가? 동포여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보이지 않는 공포가 우리를 짓눌러 우리의 슬픔을 막아버리고 우리의 눈과 귀를 막아 우리를 번득 이는 총칼의 위협아래 끌려다니는 노예로 만들고 있는 지금 동포여 무엇을 하고 있는 가?” “동포여 일어나자, 마지막 한 사람까지 일어나자. 우리의 힘모아 싸움은 역사의 정 방 향에 서있다. 우리는 이긴다. 반드시 이기고야 만다.” -김의기 열사가 쓴 ‘동포에게 드 리는 글’ 유인물 원본 소설 『의기』도 독자에게 의문을 던진다. ‘한 번의 젊음을 어떻게 살 것인가?’ 책을 다 읽고 느 낀, 관통하는 메시지였다. 요즘 청춘들의 모습을 보며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고 한다. 얼 어붙은 사회 속에서 제대로 봄을 만끽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시대적 배경의 차이로 대학 가의 풍경은 달랐지만, 의기도 나도 청춘이라는 시기를 보내고 있다는 점만은 똑같다고 생각 했다. 김의기 열사와 비슷한 시절 대학을 다닌 소설의 작가 또한 ‘그는 내가 기억하지 못할 뿐 분명히 몇 번이나 보았던 현실의 사람이었다.’고 말한다. 소설을 바라보는 관점은 때론 현실의 바탕이 되기도 한다. 역사 속의 사람 ‘김의기’가 아닌, 현실 속의 사람 ‘김의기’를 바라보며, 나 또한 청춘에 대한 깊은 고찰을 하게 된 것에 대해 감사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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