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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의기문화상

2018년도에서부터 시작됐습니다. 서강민주동우회에서 제안하여 5월 의기제에서 처음으로 시도되었습니다. 2019년도에 김의기기념사업회가 출범하여 계승하여 제2회 김의기문화상을 선정하여 시, 수필, UCC동영상분야에서 시상하였습니다. 대상도 시대에 맞춰 다양화하고 규모도 사업회의 성장에 맞춰서 확대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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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_제2회의기문화상(우수상)_수필_김우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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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019-05-15 13:32 조회1,58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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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린


당신이 우리를 빛 쪽으로 이끌어 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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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그 죽음들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이 쓸쓸한 것은 이해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이해하려는 사람이 없는 것 같다고 짐작하기 때문입니다. 가까운 곳에서 알 수 없는 죽음이 일어나도, 아무렇지 않게 그 땅 위를 밟는 오늘입니다. 어떻게 아무렇지 않을 수 있을까? 우리들 마음속 깊숙한 곳을 밝혀 주는 엷은 빛들 중 하나가 꺼진 것이 아닐까, 이제는 밤에도 너무 밝아서 그것을 아무도 느끼고 있지 못한 것일까? 도시의 하얀 어둠 속에서 생각합니다.
  그 사람은 왜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어째서, 도대체 왜, 글 하나를 남기고 죽을 수 있었을까. 도청에 남을 수 있었을까. 누군가는 왜,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면서 죽을 수 있었을까. 5월이 남긴 질문들에 대답은 없습니다. 자신의 어둠과 동떨어진 질문을 붙잡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저는 몇 년 전부터 스스로가 우울증이 아닐까 의심해 왔습니다. 밀어냈는지 밀려갔는지 모르는 잠이 오기 전에 몇 번이나 스스로를 테스트해보았습니다. 가벼운 우울증세. 악화될 가능성이 있음. 그러나 내 마음과는 미묘하게 어긋나는 우울증 자가진단보다 마음에 와 닿았던 것은 파커 파머의 책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 이었습니다. 마음의 비통함, 너무나 비통해서 산산조각이 나며 깨져서 열리는 마음이 민주주의에서 중요하다고 그는 썼습니다. 비통함과 정치 혹은 마음과 민주주의란 사람들이 선뜻 연결하지 않는 두 단어이지만, 그것들을 단단히 꿰고 있는 얇은 진실이 보였습니다. ‘자아와 세계에 관한 지식을 온 마음으로 붙든다면 마음은 때로 상실, 실패, 좌절, 배신 또는 죽음 등으로 인해 부서질 것이다. … 만일 그것이 수천개의 조각으로 부서져 흩어진다면 결국에는 분노, 우울, 이탈에 이를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경험이 지닌 복합성과 모순을 끌어안을 위대한 능력으로 깨져서 열린다면, 그 결과는 새로운 삶으로 이어질 것이다.’(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2011), 파커 J. 파머)
 저는 개인적이면서 정치적인 우울이라는 언어로 마음을 표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자식을 잃은 부모들의 슬픔에 물들고, 친구를 잃은 젊은이들의 허탈함에 물들고, 일상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무기력에 물들었던 나의 마음은 줄곧 혼자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5월에 돌아오니, 이제는 답 없던 질문들에 낮은 목소리로 무언가를 이야기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세계를 온 마음으로 끌어안은 사람들을 생각합니다. 분노와 우울과 비통한 마음, 피를 부르는 미친 군홧발 소리를 듣고 산산조각으로 부서진 마음을 상상해봅니다. 그것은 자식을 잃은 부모들의 슬픔에 물들고, 친구를 잃은 젊은이들의 허탈함에 물들고, 일상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무기력에 물들었던 나의 마음과 같이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일까. 너무 단순하게 끌어들이는 건 아닌지 겁이 나지만, 나와 같은 나이였던 그를 생각합니다. 마지막 말이 될지도 모를 글을 쓰고 있던 그의 격렬한 마음을. 그는 홀로 서 있지만 그의 마음에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와, ‘동포’와, 광주에서 짓밟힌 사람들이 눈앞에서 어른거리며 가슴을 쥐어뜯고 싶을 만큼의 비통함을 느낍니다. 그의 마음은 혼자 있지 않았습니다. 혼자 있지 않은 사람에게 죽음은 갈라짐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누군가를 다시 볼 수 없다거나, 무언가를 할 수 없다거나, 일상은 끼어들 틈 없이 그의 마음은 그가 본 것들로 가득 차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삶을 그만둔 것이 아니라, 밝고 환한 빛이 가득한 죽음을 시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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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달 전, 다시 그 책을 꺼내 들었습니다. 이번에는 예전과 다른 문장에 밑줄이 그어졌습니다. ‘내가 어둠 속에 머무는 동안 나의 보는 눈이 점점 날카로워진다는 것을 믿거나 내가 보고 있는 것을 이해하기란 어려웠다. 그러나 내가 서서히 삶으로 되돌아오면서 나 자신과 내가 의지해온 공동체를 훨씬 선명하게 인식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저는 정치적 우울의 긴 터널을 지나, 빛이 보이는 쪽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여러 사람의 슬픔과 허탈감과 무력감으로 물들었던 마음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들과도 함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어김없이 다시 온 5월에, 인간의 본성을 의심하게 만드는 참상을 두려움에 떨며 목격하고도, 산산조각 난 마음을 흩어버리지 않고, ‘우리’들에게 ‘동포’들에게 호소하는 그의 외침을 들으면서 빛 쪽으로 나아갑니다.
 일상이 된 참사와 일상이 된 추모 속에서, 비통함에 산산조각 난 마음을 들여다 봅니다. 우리는 까만 어둠의 시대에서 건너와서, 어둠을 밝히려고 하다가 수없이 실패하고, 환하고 하얗지만 여전히 어둠인 시대 속에 있는 것이 아닐까요. 어쩌면 인간의 삶이 많은 어둠과 조금의 빛으로 이루어져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어둠이 완전히 빛을 덮어버리지 못하는 것은, 우리를 밝은 쪽으로 이끌어 가는 밝은 죽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제대로 바라볼 수 없는, 바라보면 꼭 눈이 멀 것 같아 포기해버린 섬광 같은 죽음이 있어서입니다. 어렵지만, 그 뜨거운 밝음을 상상합니다. 그들과 우리가 함께 있기를 바랍니다. 그 섬광이, 깨진 마음들을 비춰 혼자만의 비통함이 아님을 알 수 있기를. 개인적이며 정치적인 우울을 알아보고 그 마음이 열릴 수 있도록 도와주기를.



 한강, <소년이 온다>(2014), 창비
‘이제 당신이 나를 이끌고 가기를 바랍니다. 당신이 나를 밝은 쪽으로, 빛이 비치는 쪽으로, 꽃이 핀 쪽으로 끌고 가기를 바랍니다’(213) 을 수정해 제목으로 썼음을 밝힙니다.




김우린(2015.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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