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_제2회의기문화상(우수상)_시_김이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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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019-05-15 13:33 조회1,465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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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에 피운 할미꽃과 같이
오랜만에 만난 그녀는 하던 밭일도 멈춘 채 성급히 걸어왔다. 그리운 손주라도 만난 듯 환하게 웃는 모습에 눈가에 있던 주름살마저 사글사글하게 느껴졌다. 잠시 지나가는 길에 인사만 드리려 했다는 말에도 노부인은 밥은 먹고 가라며 집 안으로 이끌었다. 형광등이 수 초간 깜빡인 후에야 방 안을 밝혔다. 자개가 수려한 장롱은 창틀에서 들어오는 얇은 햇빛에 반짝였고 머리맡에 두던 낡은 성경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저녁을 먹기에는 이른 시간에 우리가 처음 만난 날부터의 이야기를 하나씩 꺼내 들여다보았다. 그녀의 말에 나는 영길이, 수정이, 안경 쓰고 빼빼 마른 친구, 밤중에 고구마 몰래 먹다 들킨 녀석들의 세상 사는 이야기를 전해줬다.
어찌끄나. 우째냐. 노인은 아직 살날이 창창한 젊은 애가 어쩌다 그렇게 됐냐고 때아닌 곡소리를 냈다. 간만의 소식이 만든 침묵은 방을 메웠고 이야기는 더 이어지지 않았다. 여름의 활발한 대장 학생은 죽은 지 오래였다. 그녀는 벽에 붙어있는 단어 낱말 표를 가리키며 그때 배운 글씨는 다 잊어버렸다면서도 자신의 이름은 아직 쓸 줄 안다고 말했다. 이내 그 말이 끝나자 가지, 고구마 같은 것들을 써놨던 종이를 떼 반듯하게 접어 서랍에 집어넣었다.
노파는 언제부턴가 손을 떨고 있었다. 방 안은 하나 꺼진 형광등 불빛에만 의지한 채 어두워지고 반짝이던 자개는 빛을 잃었다.
우리가 바라본 추억은 지금 슬픈 추억이 되었다.
김이삭(2017,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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