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_제1회의기문화제(장려상)_수필_김의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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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018-05-15 13:19 조회1,139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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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위하여
엄마를 생각하면 슬프다. 아마 많은 자식들이 그럴 것이다. 내가 왜 이런저런 사회 참여 활동들을 하느냐고 누군가가 물으면, 나는 엄마 때문이라고 한다. 그럴 때면 묘하게 죄책감이 든다. 사실이 아니어서가 아니라, 사실이기에 그렇다. 나는 분명 엄마를 위해 세상을 바꾸고자 살아가지만, 그렇기에 엄마에게 제대로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는 엄마의 냉장고에 압류 딱지가 붙으려다 말았다. 아빠가 내지 않은 카드값 400만원은, 또 할머니가 땅을 팔아 갚았다. 할머니는 이제 발 디딜 땅덩이가 얼마 남지 않았다. 덕분에 내일 모레에는 가구들에 빨간 딱지들이 붙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아니다. 적어도 오늘이나 내일은 아니다.
엄마는 다음 주를 생각하는 걸 그만뒀다고 한다. 엄마한테는 내년도, 다음 달도 없다. 아까까지도 엄마가 만든 밥을 집어먹은 나한테만 웬 미래가 있고 계획이 있다. 이제 50살이 된 엄마가 목디스크와, 위장염과, 하루에 10분이 되지 않는 휴게시간으로 가까스로 채워 넣은 냉장고를 나는 매일 축내고 있다. 엄마는 치킨 너겟을 씹으면서 아빠를 죽이고 싶다고 했다.
엄마의 냉장고는 항상 나랑 동갑이다. 아마 엄마와 아빠의 결혼과도 동갑일 거다. 아빠가 노가다를 뛰기 전, 아빠가 만취해서 온 가족에게 주먹을 휘두르다 경찰차에 실려 가기 전, 아빠가 새로 시작한 사업을 다 말아먹고 술꾼이 되기 전, 아빠가 영어학원을 그만두고 집을 나가기 전, 아빠가 돈독이 올라 밤까지 학원에서 보내다가 바람피우기 전, 아빠가 엄마와 막 결혼했고 영어학원의 간판은 반들거리고 모든 게 잘 되었을 때, 그러니까 이제는 까마득한, 엄마가 행복했을 때부터 엄마 옆을 지키던 냉장고. 몇 번의 이사를 함께 한 냉장고에서는 언제부턴가 얼음이 나오지 않더니, 이제 물도 나오지 않은지 오래 되었다.
엄마의 일상을 짓뭉개고, 밟아 꺼트리고, 칼로 쑤신 것이 고작 400만원이었다는 문장에 마침표를 찍기가 힘겹다. 나에게는 한 학기 등록금, 누군가에겐 월급, 어떤 인간한테는 한 끼 식사, 아니면, 잘 모르겠다. 그것보다 작은 건 상상도 잘 가지 않는다. 아빠는 엄마의 문자에 답장이 한 통도 없다. 아빠가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는 이제 궁금하지도 않다. 그렇지만 엄마가 아무리 평범한 직장에 취업을 하라고 울고 불어도 나는 아마 그렇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때로는 단단한 것이 밉다. 며칠 동안 속이 메스꺼웠다.
출근을 하면 더 많은 엄마들을 만난다. 나는 텔레마케팅 아르바이트를 한다. '어머니'들에게 무료 영어 학습 컨설팅을 권유하고 예약을 잡아야 하는 일이다. 그 예약은 나의 실적이, 성과급이 되고 한 끼의 식사와 월세가 된다. 내가 예약을 잡으면, 누군가가 그의 집으로 찾아가 잠깐 성적 상담을 해 주고 강남 일타 강사의 월 30만원짜리 인터넷 강의를 추천한다. ‘멘트’의 진정성을 위해 나도 강의를 들어야 했다. 그리고 얼마 전 교육기간이 끝나서 첫 실전통화에 들어갔다.
첫 '실적'은 검정고시를 보는 자식을 둔 사람이었다. 정말 무료가 맞는 거냐고 물은 것 빼고는 반응도 없고 말도 없었다. 조용히 네, 네, 하면서 들을 뿐이었다. 그렇지만 계속되었던 3초짜리 통화들 끝에 처음으로 1분이 넘어가는 초침에 나는 점점 조급해져 '진정성'있게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따님의 인생을 걱정하고 어머님의 마음을 헤아렸다. 꼭 한번 상담 받아 보시라고,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될 거라고 장담했다. 감히 내가 당신의 희망임을 자임하기까지 했다. 그러더니 너무도 순순히 상담을 받겠단다. 도망도 가지 않는 물고기에 작살을 꽂아 넣은 기분이었다. 차라리 더 의심해주지, 덜컥 믿어 버리면 나는 어떡하나.
그러고 나서야 왜 ‘따님’이 검정고시를 보는지가 궁금했다. 그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또 어떤 걱정이 있는지, 무엇보다 이 마케팅이 분명한 제안에 질문도 없이 응할 만큼 절박한 것인지가 궁금했다. 상담을 받고 나서 인터넷 강의 이야기를 하면 실망하지 않을지, 말솜씨에 넘어가서 30만원짜리 수업을 사지나 않을지. 그렇게 된다면 그건 나의 책임일 것이다. 어찌되었든 누군가의 삶에 가짜 희망을 판 것은 내가 되었다. 죄 없이 살아남을 수 없다고 해서 무죄가 되나. 살기 위해 죄를 지었다고 해서 유죄가 되나. 그 와중에 끊긴 전화는 연결대기로 들어갔다.
그렇게 2분짜리 대화는 끝이 났고 주변에서는 첫 실전에 예약을 잡았다고 마구 박수를 쳐 주었다. 울고 싶은 기분이 들었는데 눈물이 나지 않았다. 우리 엄마도 방문 영어상담을 하는데. 엄마의 첫 예약은 어땠을까. 문득 '어머니' 말고 엄마에게 전화를 걸고 싶어졌다. 귀에는 다시 통화 연결음이 들렸다.
내가 만난 엄마들은 죄다 같은 모습이었다. 아마 행복한 집도 있을 테다. 하지만 행복한 집조차 불행이 있다면, 그것은 엄마들이 홀로 떠안고 있는 것 같았다. 엄마는 내가 집회에 나가는 것을 싫어한다. 뉴스에 내가 나오는 날이면, 괜히 불안해져 빨리 잠에 들곤 한다. 세상은 엄마를 힘들게 하지만, 엄마는 세상을 힘들게 할 줄을 모른다. 왜 굳이 힘들여 집회를 하느냐, 또 경찰서에 가는 것이 무섭지 않으냐, 아빠도 알고 보면 괜찮은 사람이다, 그런 말들로 나를 다독인다.
엄마는 세상을 가리키지 않지만, 세상은 매 순간 엄마를 가리켰다. 원한다면 엄마의 삶을 괴롭게 하는 것들을 ‘가정폭력’, ‘성차별’, ‘여성의 경력 단절’, ‘비정규직의 낮은 임금’ 등으로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세상은 그런 단어들로 자꾸만 엄마를 불러낸다. 피해자로, 차별받는 사람으로 말이다. 엄마는 그 부름에 대답하지는 않는다. 대신 세상이 나까지 그렇게 부르지는 못하도록 막아선다. 그러니 엄마에게 효도하기는 그른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엄마의 몫까지 세상을 괴롭히는 것일 테다.
나는 광주의 열사들이 단지 ‘민주주의’를 위해 죽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도 아마 엄마를 위해, 친구를 위해, 가족을 위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쳤으리라. 사소하지만 지극히 인간적인, 사랑이라는 감정은 언제나 세상을 바꾸어 왔다. 그 사랑은 또다시 자리를 떨치고 일어나 굳건한 땅을 뒤흔들 것이다. 어디선가 또 투쟁을 시작했다더라. 여름이 된 것 같더니 아직 날이 차다. 내일은 따뜻하면 좋겠다.
김의령(2016, 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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